쾌적하게

생활을 디자인하는 지혜

아비가일과 다비드 2008. 9. 6. 08:03
 
한국의 타샤 튜더, 마사 스튜어트로 통하는 한복 디자이너 이효재. 그녀가 7년간 정성을 쏟았던 삼청동 공간을 정리하고, 성북동 길상사 맞은편에 새 둥지 ‘효재’를 마련했다. 자연이 가르쳐주는 이치에 거스르지 않고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생활을 디자인하는 그녀에게 한 수 배워보는 생활의 지혜.
1 3층 거실 입구. 모시 보자기를 문 위에 달아 커튼처럼 장식하고, 도어 스토퍼 대신 천 조각을 담은 그릇으로 문을 고정시켜 시원한 바람길이 통하도록 한 효재의 센스가 돋보인다. 멀리 창 밖으로 펼쳐진 초록 마당 또한 이 집에선 하나의 인테리어가 된다.
2 창이 예쁜 4층 이효재의 침실. 보료와 쿠션, 커튼, 레이스 조명까지 모두 그녀가 직접 만든 것들이다. 효재는 필요한 건 제 손으로 만들어 쓰고, 다시 고쳐 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직접 손뜨개한 레이스들은 대부분 30년 이상 된 것들이지만, 자주 삶아 빨고 풀을 먹여 늘 새것 같다.
3 볕이 좋은 날이면 마당에는 빨래들이 춤을 춘다. 자연 볕에 빨래를 하얗게 말리면 기분이 상쾌해진다고.
4 마당에서 화분을 손질하는 효재의 모습을 거실 거울을 통해 바라봤다. 거실에 걸린 이 큰 거울에는 손님들에게 재미난 선물을 주고픈 효재의 마음이 숨겨져 있다. 손님이 기다리는 동안, 맞은편 마당에서 장독대와 채소밭을 부산히 오가는 그녀의 모습을 거울에 비친 상을 통해 엿볼 수 있게 한 것.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하고픈 주인의 예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유난히 볕이 좋은 날이면 이효재의 손길은 더욱 분주해진다. 이 좋은 볕을 놓칠세라, 하얗게 삶아 빤 빨래며, 주방 서랍 안에 보관했던 각종 수저와 주방기구, 광주리에 썰어 담은 가지와 무말랭이 등이 총동원된다. 마당 한쪽, 양지에 두고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날 것같이 깨끗하게 말리는 것이다. 이때도 규칙이 있다. 누가 봐도 그 풍경이 예뻐 보일 수 있게 빨래의 높낮이까지 맞춰가며 가지런히 정돈하는 것은 기본이다. 부지런하다 못해 유난하다 싶을 만큼 잠시도 몸을 놀리지 않는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끊임없이 마른행주를 개고, 접시들을 차곡차곡 쌓아 찬장에 넣으며 일손을 멈추지 않는다. 쉰한 살, 이제는 남의 손을 빌려 조금은 편히 살아도 좋지 않겠냐는 말에 그녀는 손사래를 친다.
“이렇게 내 손으로 직접 해야 하나하나 기억하고 아낄 수 있지요. 남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 어디에 ?뒀는지 찾기도 어려워요. 물건 소중한 줄 모르고 쉽게 버리는 것도 많아지고요. 살림하는 걸 일이라 생각하면 절대 이렇게 못하죠. 일이라 생각하는 순간 그건 숙제가 돼버리니까요. 그저 물건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는 모습이 예뻐 보이고, 예쁜 걸 보면 기분이 좋고 즐거우니까 신나서 하는 거죠.”
치워도 치워도 티가 나지 않는 살림이라고 한탄하기보다는 ‘내 집에서만큼은 내가 스필버그 감독’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집을 내 손으로 디자인하다 보면, 집 안의 소소한 일조차 즐거워진다는 이효재. 지난 5월, 그녀는 7년 동안 살림을 꾸렸던 삼청동 한옥집을 떠나 성북동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이전의 아담한 한옥집에 비하면 이번 집은 대궐만큼 크다. 1층엔 차고를 개조해 만든 생활소품 매장이, 2층엔 한복숍이 자리하고 있다. 시원한 마당을 품은 3층은 이효재의 개인 공간이자 그녀에게 살림 노하우를 배우고자 찾아온 이들을 위한 클래스가 열리는 강의 공간으로 쓰인다. 4층은 직원들을 위한 디자인 사무실 겸 휴식 공간이 갖춰져 있다. 공간은 이전보다 몇 배로 넓어졌지만, 이사 올 때 늘어난 짐이라곤 김치를 담근다고 채반 2개와 광주리 2개를 산 것뿐이다. 그녀는 좀처럼 새 물건을 사지 않는다. 쓰고, 다시 쓰고, 고쳐 쓴다. 그렇다고 그 모습이 궁색해 보이진 않는다. 그녀만의 생활 감각으로 유니크한 공간을 완성할 줄 알기 때문이다.


1 소파 하나 없이 덩그러니 비어 있는 거실은 때로는 강의실로 변신한다. 그녀에게 전통 문화며 살림 노하우에 대한 지혜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수강생들은 오동나무 책장을 엎어서 책상으로 삼고 방석을 깔아 둥글게 둘러앉아 수업을 듣는다. 그 풍경이 우리네 서당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2 집에는 유난히 거울이 많다. 크고 작고, 길고 짧은 다양한 크기의 거울들이 복도, 거실, 화장실 곳곳에 붙어 있다. 이 집을 찾은 이들 모두가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매만지며 늘 예쁜 모습을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거울 아래, 보자기로 감싼 데커레이션도 눈에 띈다. 색색 보자기들이 꽃밭을 이룬 듯하다.

거실에 해당하는 3층 강의실만 봐도 그렇다. 덩그러니 비어 있는 마룻바닥과 어머님이 손수 감아 주셨다는 실 꾸러미를 모아놓은 오동나무 책장이 거실 풍경의 전부이다. 그 흔한 소파 하나 없다. 이유인즉, 소파 대신 방석을 활용하면 거실을 집 안의 정원처럼 넓게 쓸 수 있기 때문이란다. 소파를 두면 불과 서너 명밖에 앉을 수 없는 자리도, 방석을 놓으면 여러 명이 모두 왕처럼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생긴다. 바닥 생활을 하면 집이 높고 넓어 보이는 효과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고. 요즘 그녀의 새집에는 많은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보자기를 활용하는 방법에서부터 자연 밥상 차리기, 모시 블라우스 만들기, 우리 전통 문화 배우기에 이르기까지 의식주 전반에 걸친 그녀의 노하우를 듣기 위함이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오동나무 책장을 엎어서 책상으로 삼고, 방석을 깔고 동그랗게 둘러앉은 모습은 마치 우리네 서당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집 안 여기저기에선 거울을 활용한 데코 아이디어가 특별히 눈에 띈다. 크고 작고, 길고 짧은 다양한 크기의 거울들이 복도며 거실, 화장실, 현관 등에 붙어 있다. 평범한 거울 끝 테두리에 한지를 곱게 발라 액자처럼 만들었다. 행여 헝클어진 모습을 보일까, 이 집을 찾은 이들 모두가 거울 앞에서 ‘이쁜 짓’을 하길 바라며 걸어놓은 것이다. 특히 거실에 마련한 큰 거울에는 손님들에게 재미난 선물을 주고픈 주인의 마음을 숨겨 놓았다. 손님이 기다리는 동안, 거실 맞은편 마당에서 장독대와 채소밭을 부산히 오가는 효재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엿볼 수 있게 한 것. 그러니 이곳을 찾은 손님은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손님을 위한 상차림은 또 어떤가? 집에서 자주 해먹는 평범한 것들이지만 그 담음새에서 주인의 정성이 듬뿍 느껴진다. 에디터와 촬영 스탭을 위해 그녀가 내온 점심상에는 따끈한 밥과 빈대떡, 양파 장아찌, 김치가 올라왔다. 대단한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젓가락 하나에도 마당에서 뜯은 풀잎으로 곱게 리본을 매어주고, 직접 수를 놓은 보자기로 따뜻하게 밥 그릇을 감싸고, 물 한 잔에도 푸른 나뭇잎을 깔아 정갈하게 내어 놓으니, 누군들 대접 받는 기분이 아니 들겠는가. 이렇게 쉽고도 친근한 방법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지혜를 터득했으니, 그녀는 아무리 많은 손님이 찾아와도 두려울 게 없다.


1 거실 맞은편에 위치한 주방. 각종 자잘한 살림으로 지저분해지기 십상인 주방도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 늘 정갈한 모습이다.
2 이 집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 만화방. 효재가 아주 오래전부터 모아온 각종 만화책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만화책 덕분일까? 재치 있는 효재의 한마디 한마디는 많은 이들을 웃게 만든다.
3 거실 한쪽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소반과 방석들. 방석을 활용하면 거실을 집 안의 정원처럼 넓게 쓸 수 있다고, 효재는 귀띔한다. 소파를 두면 불과 서너 명밖에 앉을 수 없는 자리도 여러 명이 모두 왕처럼 편하게 앉을 수 있다고.

필요한 건 제 손으로 만들어 쓰고, 자연이 주는 선물을 그대로 활용하는 그녀의 살림 노하우를 실전에 활용하기 위해선 마당 가꾸는 일도 아주 중요하다. 꽃밭은 없어도 채마밭은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 이사 올 때만 해도 마당엔 잔디 외에 이렇다 할 식물이 없었는데, 어느새 딸기, 땅콩, 가지, 야콘, 토마토, 겨자잎, 옥수수, 호박, 케일 등등 그 수를 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채소들로 풍성해졌다. 바비큐 테이블이 놓여 있던 공간엔 정겨운 장독대를 옮기고, 그 옆엔 직접 땅을 파고 비닐을 깔아 연못을 만들었다. 그 위에 띄웠던 연에선 어느새 단아한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있다.
창이 예쁜 4층 침실은 보료를 깔고 아늑한 휴식 공간으로 꾸몄다. 이 방의 보료는 물론, 쿠션, 커튼, 레이스 조명 모두 그녀가 직접 만든 것들이다. 싫증 난 베갯잇을 커튼으로 활용하고, 싸구려 조명 갓에 하얀 레이스 뜨개를 덧입혀 완성한 것. 보기 싫은 못 자국, 쓰지 않는 콘서트를 가리고 감추는 데도 레이스 장식을 곧잘 이용한다. 모두 십수 년씩 오래된 것들이지만, 자주 삶아 빨고 풀을 먹여 다린 정성 탓에 새것처럼 탐스럽다. 현관에 들어서면 색색 보자기로 감싼 포장들이 예쁜 꽃밭을 이룬다. 그녀에겐 값비싼 페라가모 스카프도 한낱 보자기에 불과할 뿐이다.
“나에게 노동은 죽을 때까지 행해야 하는 현재진행형이에요. 저는 스스로 게을러지는 게 싫어요. 나를 경계하려고 자꾸 몸을 움직이고 일을 찾아 부산을 떨죠. 그러다 보면 내 자신이 텅 비는 듯 가벼운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노동은 나에겐 명상 같은 일이라 할까요? 저를 보고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은데, 그저 부러워만 하지 말고 스스로 행하면 됩니다. 빨래 하나를 하더라도 예쁘게, 음식 하나를 하더라도 먹음직스럽게, 그렇게 내 삶을 예쁘게 가꿔보세요. 그럼 어느새 빨래조차도 아트가 되어 있을 거예요.”
그러고 보면, 그녀의 생활 방식 중에 어렵거나 까다로운 건 하나도 없다. 단지 하고자 하는 마음, 작은 풀꽃 하나, 열매 하나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 그것이 이효재가 누더기 헝겊으로 날개옷을 만들고 초근목피로 진수성찬을 만드는 비법이 아닐까.


1 창가에 옹기종기 모아놓은 각종 다기 세트들. 낡은 창틀엔 손수 수놓은 천을 붙여 지저분한 부분을 가리고, 창문에는 한지를 찢어 붙여 곱게 장식했다. 큰돈 들이지 않고 남과 다른 데커레이션을 선보이는 것이 효재의 장기이다.
2 촬영 스탭을 위해 그녀는 소박하지만 정성이 듬뿍 느껴지는 밥상을 준비했다. 젓가락 하나에도 마당에서 뜯은 풀잎으로 곱게 리본을 매어주고, 직접 만든 보자기로 따뜻하게 밥그릇을 감싸준 주인의 정성에 어느 객이 감동하지 않겠는가.
3 도심에 있어도 자연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마당. 자연이 주는 선물을 생활 속에 활용할 줄 아는 효재에게 마당은 무척 소중한 공간이다. 꽃밭은 없어도 채마밭은 꼭 있어야 하고, 각종 빨래며 고추며 무, 가지를 말릴 때도 마당이 꼭 필요하다. 이사 올 때만 해도 잔디밖에 없던 마당엔 어느새 장독대와 연못, 각종 채소들로 풍성해졌다.


에디터 김주윤(프리랜서) | 포토그래퍼 전택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