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하게

여름의 끝자락에서 문화 산책

아비가일과 다비드 2008. 9. 1. 15:05

 
여름의 끝자락에서 문화 산책




1 서로 공경하고 우애하며 살게 해주소서
민화 작가 정성옥 씨의 문자도
한국 전통 미술 작품 중 모던하고 아방가르드하기로는 민화가 최고 아닐까 싶습니다. ‘잘 살게 해달라’는 원초적인 소망을 자유분방하고 위트 있게 표현하는 ‘센스’에 시대를 초월해 경탄하게 됩니다. 지난해 10월호 <행복> 표지를 그린 민화 작가 정성옥 씨가 <행복> 독자 가정의 행복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밤새워 문자도를 완성했습니다. 민화는 화조도, 초충도, 책가도, 십장생도 등 소재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되는데 그중 문자도는 집안에 바른 가치관이 깃들기를 바라며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 등 여덟 문자로 구성한 민화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나라에 충성하며 예와 의를 알고 청렴하게 살며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말라는 유익한 덕목이 담긴 그림이지요. 전통적인 방법으로 뜬 수제 장지에 달맞이꽃으로 은은하게 염색한 뒤 먹과 아교, 분채를 사용해 채색했기 때문에 오래 보관할수록 색의 깊이가 더해갑니다. 원래 민화는 ‘작자 미상’으로 남기 때문에 정성옥 씨 역시 작품에 낙관을 찍지 않았답니다.



2 가족의 행복, 벽화보다 길이 남아라
템페라 화가 서해경 씨의 작품

중국 유학 시절, 서양 벽화의 일종인 템페라 작품을 보고 숨이 멎을 듯했다는 화가 서해경 씨. 세월을 모두 포용한 듯 깊이 있는 색감 때문에 작품이 가히 보석 같았답니다. 채색화를 공부하던 그는 그날로 템페라에 빠져들었습니다. 본격적인 채색에 들어가기 전에 나무 패널을 준비하는 기간만 꼬박 일주일이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지만, 템페라 작품은 완성하고 나면 그 시간이 수고롭지 않게 느껴질 만큼 아름답고 격조 있는 색이 나온답니다. 지난 6월호 <행복> 표지 작가인 그는 가정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민화풍의 꽃을 그렸습니다. 함께 오래 지낼수록 더욱 정겨움이 묻어나는 부부 같은 작품입니다.
 

3 풍요로운 겨울 숲, 수런대는 여름 나무
동양화가 이지연 씨의 수묵화

따뜻한 설경으로 지난 1월호 <행복> 표지를 장식한 동양화가 이지연 씨는 겨울나무를 편애하는 작가입니다. 사람들은 겨울나무가 쓸쓸하고 황량하다 이르지만 그는 겨울에 만나는 나무가 가장 풍요롭고 아늑하다지요. 그가 표지 이야기 인터뷰를 할 때 ‘이제는 봄나무, 여름 숲에도 눈길이 간다’며 스치듯 말한 적이 있는데, 반년 만에 정말로 여름 풍경을 펼쳐냈습니다. 여름이 되자 나무가 각기 다른 곳을 향해 목을 쏙 빼고 ‘기웃기웃’하더랍니다. 나무가 수런대는 소리를 예민하게 포착해 곱고도 힘 있는 선으로 담아냈습니다. 9월 2일부터 9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동양화 새천년전>에서 그의 수묵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4 ‘느린 시선으로 기록한 찰나의 영감 |
사진가 김병훈 씨의 사진

봄꽃 중 목련의 등장은 참으로 극적입니다. 큼직한 봉오리가 봉긋하게 솟아나면, 죽은 줄 알았던 나무 어디에 그처럼 고운 꽃잎이 숨었었나 싶지요. 일상의 풍경을 정제된 화면으로 담아내는 사진가 김병훈 씨에게도 목련은 놀라운 꽃입니다. 느린 걸음으로 산으로 들로 다니며 그는 손때 묻은 노트에 이렇게 적습니다. “곤충 껍질처럼 두껍고 딱딱한 나무줄기 안에서는 겨우내 무슨 일이 있었는지요. 신기하게도 순서를 정한 듯 차례로 피어납니다.” 이 경이로움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9월 20일부터 10월 12일까지 차이갤러리(02-333-6692)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그가 채집한 봄기운을 좀 더 느낄 수 있습니다.


5 이글이글 작열하는 해처럼 활짝 피어라
화가 류제비 씨의 회화 작품
지난 8월호 <행복> 표지 작가 류제비 씨의 작품은 박하사탕 맛입니다. 채도 높은 원색으로 이루어진 경쾌한 화면을 볼 때마다 박하사탕을 빨다가 ‘호~’하고 숨을 들이켰을 때 나는 그 상쾌한 맛입니다. 얌전한 꽃꽂이의 전형을 따르지 않고, 살고 싶은 대로 얼굴을 들고 있는 꽃 무더기를 보면 어쩐지 기운이 납니다. 세상이 규정한 색의 스펙트럼을 벗어나 나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색을 찾아 떠나봐야겠습니다. 류제비 씨의 작품은 9월 19일부터 23일까지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KIAF의 동원화랑 (053-423-1300) 부스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6 때론 두서없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
화가 전영근 씨의 회화 작품

화가 전영근 씨가 그린 자동차는 뒷모습만으로도 보는 이를 설레게 합니다. 트렁크를 연 채 배낭이며 낚싯대, 카메라, 책 몇 권을 싣고 달리는 아담한 자동차에 대체 누가 타고 있을지, 부러울 따름입니다.
지난 7월호 <행복> 표지로 선정되었던 여행 시리즈 중에서 빨간 미니카를 골라준 그는 독자들에게 ‘망설이지 말고 유쾌한 여행을 떠나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완벽하게 짐을 챙길 생각은 하지 말고, 그의 작품처럼 눈에 띄는 준비물만 두서없이 싸 들고 떠나라고요. 그 여흥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면 10월 22일부터 28일까지 노암 갤러리(02-720-2235)에서 열리는 그의 개인전에 가보는 것도 좋겠지요.


7 밥상 그림 안에 담긴 인생 이야기
화가 정경심 씨의 회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거운 밥상을 싹싹 비웁니다. 세상만사와 실없는 농담을 반찬 삼아서. 화가 정경심 씨(올해 3월호 <행복>의 표지 작가)는 이렇게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 하루하루 모여 삶이 되는 밥상 풍경을 담아 그림으로 이야기합니다.
밥상을 인생을 바라보는 통로로 삼으라고 한마디 덧붙입니다. 그의 아름다운 밥상 그림은 올해 12월 4일부터 토포하우스(02-734-7555)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습니다. 밥상 그림으로 푸근해지는 연말을 맞고 싶으신 분은 꼭 들러보세요.


8 눈물 흘리고 열정을 태워야 인생이다
화가 찰스 장 씨의 회화 작품

화가 찰스 장(www.charlesjang.com) 씨의 작품 속 톰과 제리, 미키 마우스 등 친숙한 캐릭터는 등 뒤에서 불이 타오릅니다. 얼굴에서는 뭔가 흘러내리고 있고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뒤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활동하다가 길거리 벽면에서 다시 캔버스로 돌아온 화가답게 그래피티처럼 자유분방한 색감이 느껴집니다. ‘흘러내림’과 ‘불타오름’의 조형미를 사랑하는 그는 “눈물도 흘리고 열정도 불살라야 인생이다”라고 말합니다. 마치 도자기가 탄생하려면 이글대는 불 속에서 유약이 흘러내려야 하듯 말이지요. 9월 1일부터 10일까지 원화랑(02-514-3439)에서 열리는 전시 <가면 무도회>에서 로보트 태권 V뿐 아니라 도널드 덕이나 건담도 만날 수 있습니다.


9 자연과 인공물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사진가 양재준 씨의 사진

자연은 그 모습 그대로도 아름답지만 인간이 쓴 각본에 의해 각색되었을 때 색다른 멋을 드러냅니다.
<행복>의 포토 디렉터로 활동하며 음식・인테리어 사진으로 다양한 독자층의 호응을 얻고 있는 사진가 양재준 씨. 그가 일본 나오시마의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건축물을 찍은 사진도 그러합니다. 위로 뻥 뚫린 건물 사이로 비치는 하늘과 그 모습을 담은 수면은 바라보는 이에게 더 넓은 하늘, 더 푸른 바다를 떠올리게 하니까요. 반복된 타원형, 그리고 하늘과 물의 대비는 사진에 역동성을 부여하며 강렬한 힘마저 느끼게 합니다.



10 한 걸음 밖에서 도시를 바라보다
사진가 박찬우 씨의 사진

사진가 박찬우 씨는 지난 12년간 <행복>에 소개된 아름다운 주거 공간에 자신만의 공기를 담았습니다. 평범한 집이라도 그의 앵글에 담아 사진으로 기록하면 가족 구성원의 따뜻한 이야기가 맑고 깊게 묻어나지요.
오랜 기간 집을 촬영해온 그지만 문득 집과 거리를 두고 싶을 때가 있답니다. 그때마다 인근의 신도시를 찾아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셔터를 누릅니다. 그가 바라본 도시 역시 그의 작업 스타일대로 온화하면서도 내면에 감춰둔 힘 있는 시선이 느껴집니다.